신체발부 수지부모가 왜 내게 적용되는 한자숙어가 됐는지,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형상을 그대로 간직하지 못하도록 뭔가 작업을 해야 나의 전문성과 삶의 기본이 보장되는 내 상황의 정체를 아직은 설명하지 못한다.
불혹의 의사가 이럴진대 수술 받는 환자의 심정은 오죽하랴. 하지만 미숙한 의사에서 출발하여 십수년간 나의 많은 환자들을 만나면서 그분들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을 요즘에야 어렴풋이 표현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아마도 내 진료실에 들어오시는 모든 분들은 최소한 1년 이상의 자아성찰과 고민 그리고 여러 방면에서의 reference를 훑어보고 연구한 끝에 그 문턱을 넘어 올 수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환자들은 \"선생님. 선생님께서 따-악 보시기에 저의 얼굴은 어디를 어떻게 고쳐야 좋을 것 같습니까?\" 하고 나의 전지전능함을 넌지시 떠보기도 한다. 나도 이 기대에 부흥하고자 모든 오감과 육감까지 동원하여 환자(?)의 외적, 내적인 상황을 파악하고 적절한 질문과 분석을 통해 대답할 말을 준비할 태세이다.
그러다 이내 포기하고 언제 부턴가 되풀이 하는 얘기를 늘어놓는다. \"제가 당신이라면 내가 먼저 나 자신을 구체적으로 뜯어보면서 내가 성형외과 의사라면 어디를 어떻게 수술하리라고 마음껏 상상을 해보겠어요. 물론 수술 결과도 상상해 보면서 말이죠. 전문적인 의학지식이 없어도 상관없습니다.
\"이렇게 서로 입장 바꿔보기를 해 보는 것이다.
그러면 환자는 서서히 지난 몇 년간 준비한 것을 기초로 자신의 수술계획을 설명하며 상상의 나래를 편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약간 사이가 가까워 진 것을 느끼지만 아직 시작이다. 서로가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그것을 달성하려는지, 같은 질문을 내게도 똑같이 던져보면서 서서히 두 사람은 공동의 목표, 과정, 방법 등에 접근하게 된다. 그러면서 공범으로서 느끼는 연대감과 동지를 얻은 뿌듯함으로 득의 만만한 웃음을 마주본다. 그러다 곧 상대의 웃음 뒤편에 얼버무린 그림자가 느껴지면서 서로 어색하게 웃음을 닫는다.
그것은 동지의 두려움이다.
이때 \"나 떨고 있냐?
\"고 묻는 최민수의 눈빛을 떠올리는 것은 아무래도 \"이 상\"식의 비약일까.
환자는 나의 잘 감춰진 두려움을 잘도 찾아내곤 때로는 위로하고 때로는 함께 염려하지만, 이로 인해 깊은 두려움에 빠지기도 한다. 의사도 환자의 가슴속에 있는 그것을 눈치채고 내심 공감하기도 하고 또 화가 나기도 하며 자신의 두려움을 소화해 보려 애를 쓴다. 그러나 나는 결국 내 속을 드러내 \"지금 나 떨고 있다.\"고 털어놓아야 서로의 두려움이 진심으로 나의 위로가 되고 용기가 됨을 그동안의 경험으로 알고 있다.
이 두려움이 정확히 무엇이든 간에, 이를 인정하고 나서야 나의 동지(?)에게 최선을 했노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왜냐면 최선은 전문적이고 철저한 준비와 과정 뿐 아니라 끝까지 서로를 그리고 나 자신을 인정하고 고백하고 용납한 이후에 나타나는 결과인 것 같다. 최선은 홀로 되뇌이는 독백의 대사가 아니라 함께 나누는 2인분의 분량이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그간의 삶에서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때가 생각나 숨고 싶고 용서를 구하고 싶어 가슴이 달아오른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지어주신 모습을 전문적으로 손대는 참 버르장머리 없는 내게도 이런 지혜를 알려 주셨다. 전지전능(?)한 의사로서 혼자 몰래 두려움에 떨지 말고 \"지금 나 떨고 있어.\"라고 고백함으로써 2인분 분량의 위안, 격려, 용납되는 기쁨과 함께 제대로 그 두려움을 이길 수 있다고.